조국소식
 
〈안중근의거 100년〉 일본에서의 안중근연구의 현황과 과제(중)
《동양평화론》의 뛰여난 현대적의의
 
2. 연구과제

안중근의 사상

⑴생성기의 조선근대나쇼날리즘의 원형

이또 히로후미사살후 로씨야헌법에 의하여 체포된 직후의 안중근
  안중근의 생애는 애국계몽운동 및 의병운동의 두가지 조류를 통일하는 궤적을 더듬고있는것으로 하여 생성기에 있어서의 조선근대나쇼날리즘의 원형을 이루고있다고 할수 있다.

  안중근은 전통적유교사상의 《天賦之性》을 기초로 하여 사회계약설(天賦人権説), 기독교사상이 복합한 사상체계를 갖추고있었다. 그는 의병투쟁에 즈음하여 일본의 《야만》에 대항하기 위하여 《약자가 강자를 물리치고 仁으로 悪에 이기는 법》을 실현하려고 하여 국제법=《信義》에 충실하는것을 그 전략의 첫째로 하였는데 그 기저에는 天賦人権論의 보편적원리가 깔려있다.

⑵기독교신앙의 주체성 관통

  안중근은 기독교도로서 《죽이지 말라》는 성서의 훈계와 伊藤살해의 사이에 가로놓인 모순을 명쾌하게 극복하는 사상적, 신학적론리를 가지고있었던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伊藤가 《통감으로 한국에 와서부터 수만의 인명을 죽이고》 조국을 멸망시키려고 하고있는데 이를 저지하지 않고 방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죄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에게는 나쇼날리즘과 기독교적휴머니즘이 결부된 저항의 정신이 있었다.

  안중근이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자기를 바친것과 교회에 충실하면서 조선인으로서의 신앙의 주체성을 관통시킨것은 기독교와 종교의 본연의 자세에 대한 큰 물음으로 될것이다.

⑶《동북아시아평화체제》구축, 100년전에 구상

할빈역에 내린 이또 히로후미(번호5번)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뛰여난 현대적인 의의를 가지고있다. 그의 동양평화론은 조선의 개화파가 주장한 중립론과 일본의 아시아주의자가 주장한 아시아련대주의와도 차원이 달라 아시아각국의 자주독립에 기초한 평화론이다. 구체적으로는 제국주의의 동아시아침략에 대항하여 조, 중, 일의 자주독립에 기초한 3국련대와 그 실천방법을 구상한것이다. 그의 동양평화론은 반제국주의, 자주독립, 평화주의를 기초로 하여 우선 동양3국이 공동체를 구성하고 세계에 규범을 보여주자고 한것이였다.

  지금 자주 론해지고있는 《동북아시아평화체제》의 구축을 이미 백년전에 구상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⑷안중근재판의 성격과 국제법의 가능성

  《나는 개인모살(사혐〈私嫌〉의 범죄인이 아니다. 나는 대한제국의 의병으로서 참모중장의 의무를 지니고 할빈에 이르러 습격을 한 후 포로로 된것이다. 려순지방재판소는 이에 관계할수 없으며 바로 만국공법과 국제공법에 의하여 재판하여야 할것이다.》(《안중근자서전》)

  안중근의 이 주장은 결코 근거가 없었던것이 아니였다. 당시는 약육강식의 국제법이 지배하는 제국주의시대였으나 自然主義法=天賦人権論의 립장에서 국제법을 《정의》와 《권리》의 법리념을 구현한것으로 보고 자의적인 권력에 대하여 억제력을 가진다고 리해하는 견해도 있었다.

  안중근은 당시 국제법을 《신의》의 법으로 리해하였을뿐아니라 실지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의병투쟁시기에 일본인포로를 다른 의병들의 의견에 맞서 군규에 따라서 석방한바가 있었으나 이것은 안중근이 당시의 전쟁포로의 대우에 관한 국제법(《陸戦의 法規慣例에 関한 規則》)을 잘 알고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또한 재판과 감옥에서 안중근을 접한 많은 일본인들이 伊藤의 통감정치의 정당성에 의문을 가져 안중근의 《의전》에 《정의》를 발견하였기때문에 옥중에서 씌여진 자서전 《안응칠력사》, 《동양평화론》, 휘호 등이 그들의 손에 의하여 보존되고 안중근의 인물과 사적에 대한 증언을 후세에까지 전할수 있었던것이다.

  関東都督府지방법원에서 열린 안중근재판은 재판소의 관할권을 둘러싸서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이 사건이 1899년 韓清通商条約에 의하여 조선인의 치외법권이 인정되고있는 만주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재판은 대한 제국정부의 형법을 적용하여 진행되여야 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하여 일본의 재판에 부치는것은 조선인민을 자극할뿐만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의문을 줄수 있으며 법률적으로도 문제시될수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측도 알고있었고 판결문에서 재판의 합법성을 강조하는데 일관하였다.

  일본측이 말하는 합법성이란 1905년 11월에 강제조인한 《제2차 일한협약》(을사5조약)에 의하여 《외국에서의 한국의 신민 및 리익을 보호》하고 따라서 《형사법의 적용에 있어서 한국신민도 제국신민과 동등한 지위에 두어 그 범죄에 제국형법을 적용처단하는것은 가장 협약의 본지에 맞는》(《판결문》)다는것이다.

  일본측의 론리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을사5조약》은 외교권에 관한것이며 공판장에서 일본인官選(水野吉太郎, 鎌田正治)마저 지적한것처럼 재판권에 관한것은 아니였다. 関東都督府지방법원에서 열린 안중근재판은 재판소의 관할권을 확립하는 법적근거가 결여되고있었으며 또한 일본측이 법률적으로 보아도 정당한 안중근의 주장을 그의 생명과 함께 말살하기 위하여 미리 결론을 내리고있었던 정치재판이였던것이다.

  오늘 변호사인 鹿野琢見, 戸塚悦郎는 안중근재판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재심청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있다.
(강성은 조선대학교 도서관관장)
2010/03/08 13:3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