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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도큐멘타리영화 《히로시마, 평양-방치된 피폭자》를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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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초순 伊藤孝司감독의 도큐멘타리영화 《히로시마, 평양-방치된 피폭자》를 관람하는 기회를 가졌다.
교또역가까이에 자리잡은 상영회장에는 우리 일군들과 동포들, 민족교육사업을 비롯한 우리 애족애국운동을 지지협력해주는 낯익은 대외인사들과 일본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영화는 감독이 3차례에 걸쳐 조선을 방문하고 장기간 평양에 머무르면서 취재한 귀국피폭자의 생활을 담은것으로서 원자폭탄 피폭으로 인해 입은 상처와 슬픔, 그를 방치하고있는 일본당국에 대한 원한이 생동하게 그려져있었다.
첫 장면은 평양에 사는 주인공 리계선씨가 량손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그 우에 고무장갑을 두겹으로 끼고 설겆이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되였다. 그는 손가락의 피부가 자꾸 벗기여 약도 바르고 붕대를 감는데 그래도 피가 난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3살때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의 피해를 받은 사실을 모른채 성장하여 단신 귀국하였다. 그후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단란한 가정의 주부로 생활하였다.
 | | 영화는 평양에 사는 피폭자를 다루었다. |
그는 자신의 건강을 좀먹는 손가락 피부병과 어릴적부터 앓고있는 소화기의 병을 포함한 갖가지 질병의 원인을 모르고있었다.
히로시마에서 조국을 방문한 어머니를 통하여 그것이 원자폭탄에 의한 방사선피해라는것을 알게 된것은 56년이 지난 뒤였다. 어머니는 사실이 알려지면 결혼상대에게 큰 충격을 주며 사람들이 피폭자라고 멀리할가봐 사실을 숨겨두었던것이다. 영화는 피폭자 주인공의 정신육체적고통과 고민을 적라라하게 보여주고있었다.
미제가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군 원자폭탄에 약 7만명의 동포들이 피폭하였다. 겨우 살아남은 조선사람들도 방사선피해로 사망하거나 심한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있다. 더우기 귀국한 재일동포피폭자중 현재 382명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후 오늘까지 조선과 일본사이에 국교가 없다는 단 하나의 리유로 차별을 받고 버림을 받고있는것이다.
영화는 조선에 일본정부가 보상, 구제해야 할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것을 날카롭게 제기하고있다. 또한 피폭, 해방, 민족교육, 귀국실현이란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재일동포들의 력사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영화의 절정이며 관람자모두의 심금을 울리고 눈물을 자아낸것은 예상치 않은 결말로 끝나는 장면이였다.
그것은 히로시마에 계신 고령의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던 주인공이 우리 말과 일본말을 섞어가면서 지금은 일본당국의 《제재》조치와 여러 사정으로 어머니를 만나뵙지 못하지만 부디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셔서 언젠가 다시 만나 감격의 상봉을 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눈물겨운 호소를 한 뒤에 비쳐진 어머니의 모습이였다.
피폭후유증으로 인해 자꾸만 빠져가는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원자폭탄만은 절대로 잊을래야 잊을수 없소! 원자탄 싫고싫어!》라고 호소하던 어머니가 촬영한 닷새후에 86세를 일기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마는것이다.
세상은 어쩌면 이리도 무정하단 말인가! 너무하지 않은가!…
영화관람을 마치고 나는 《만경봉-92》호의 배길을 차단하고 그처럼 바라고바라던 혈육들의 상봉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일본당국에 대한 치솟는 분격으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일본당국은 조선에 대한 《제재》조치를 당장 걷어치우고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하루빨리, 조선의 피폭자들에 대한 응당한 보상과 구제를 해야 한다. 그 법적, 인도적책임을 수행할것을 나는 강력히 요구한다. 그리고 이 영화를 우리 동포들은 물론 광범한 일본사람들이 더 많이 보도록 적극 장려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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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일 총련 교또부본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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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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