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수령님의 유훈교시와 김정일장군님의 지부중시사상을 가슴에 새겨 지부위원장의 책임성과 역할을 높일데 대하여
총련오사까 이꾸노동지부 송동휘위원장
1994년 7월 7일, 처음으로 《총련지부일군대회》가 가져진 그때로부터 15년간 저는 동포들의 생활단위인 지부에서 사업하여왔습니다. 저는 총련일군으로 나선 첫시기부터 지부위원장을 맡고싶다는 꿈을 가져왔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을 받들어모시고 한생을 총련일군으로, 오래동안 총련지부위원장으로 사업하였습니다. 동포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동포들의 사랑과 신망을 받으면서 사업하신 아버지의 뒤모습을 보면서 성장해온 저는 아버지처럼 지부위원장으로 사업하는것이 자연스럽게 자기의 인생목표로 되였습니다. 그 희망이 실현되여 오늘 이 높은 연단에 총련지부위원장으로 서있으니 저는 수령님의 유훈교시와 장군님의 지부중시사상을 언제나 가슴에 새겨 대를 이어 지부일군의 영예를 빛내여나갈 긍지감으로 하여 가슴 벅차오르고있습니다.
저는 올해에 들어와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한 투쟁에서 날마다 위훈을 창조해나가고있는 조국인민들과 마음과 숨결을 같이하여 지부사업을 혁신할것을 굳게 다짐하였으며 그러던참에 총련 가와사끼지부가 전체 지부일군들과 열성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접하였습니다.
가와사끼지부편지는 읽으면읽을수록, 새기면새길수록 2012년 가와사끼지부의 미래를 생동한 화폭으로 보는것만 같아서 충격과 흥분으로 저의 가슴을 뜨겁게 하여주었습니다. 호소문에 무한히 고무된 우리 지부 비전임상임들도 이꾸노동지부의 새로운 전성기모습을 그려보면서 우리 지부가 새로운 전성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풀어야 하는가, 그 방도는 어디에 있는가 맹렬한 토론을 거듭 벌리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우리 지부의 전성기는 문제없다, 문제는 지부위원장인 저자신에게 달려있다는것을 통감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4월 28일 제2차 지부일군대회를 지향한 《총련 이꾸노동지부 70일간집중전》궐기모임자리에서 먼저 자기 자신을 총화하였습니다.
우리 지부는 저와 비전임열성자 9명으로 상임위원회가 꾸려지고 회의도 정상적으로 진행하여왔으나 저는 지부사업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틀어잡지 못하고있었으며 비전임들을 위원장사업을 방조해주는 사람으로, 당면한 행사조직의 동원자로만 보고 대하여왔습니다. 저는 궐기모임마당에서 자기 자신을 내놓고 비판하였으며 《70일간집중전》기간 비전임역직자들과 거주 총련본부일군들, 단체일군들, 학교 교원들 모두다 한덩어리가 되여 사업해나가자고, 2012년에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제낄 일념으로 지부의 조직적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비약의 계기를 꼭 마련하자고 열렬히 호소하였습니다.
궐기모임을 계기로 우리 지부는 지부상임위원회를 기본으로 기층조직을 정비강화하고 그 기능과 역할을 높이는데 주력하였습니다.
상임위원회의 역할을 높이는 기본방도는 집체주의를 발휘하고 비전임상임들의 애국적열의와 창조적, 창발적 힘과 지혜를 발동하는것입니다. 상임위원회에 앞서 정세학습과 방침학습을 제도화하게 됨으로써 상임위원들스스로가 자기 부서사업을 깊이 연구하게 되였으며 분회에 대한 담당제에 따른 지도방조사업도 주에 한번 정기적으로 벌리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분회강화의 기본을 분회위원회를 새 세대열성자들로 결정적으로 확대하여 그 역할을 높이는데 두고 사업하도록 하였습니다. 《동포되찾기운동》과정에 련계를 깊여간 30대, 40대 동포들을 군중핵심으로 키워나갈 안목밑에 《훈민정음》이란 이름을 단 지부 독자적인 교양자료묶음집을 작성하여 대상동포들에게 보급하는 체계를 새로 내왔습니다. 그리하여 이 기간만 하여도 분회위원을 새로 8명 보강하였습니다.
동시에 우리 지부에서는 단체들에 대한 상임위원회의 지도기능도 높여나감으로써 단체들의 사업에서 새로운 전진을 이룩하였습니다.
녀성동맹위원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녀성동맹조직의 대를 이어나가겠다는 투철한 결심을 안고 평일에는 회사일이 끝나는 저녁 9시부터, 일요일은 거의 모든 시간을 새 세대를 비롯한 동포녀성들과의 사업에 돌려나갔습니다. 결과 녀성동맹은 이 기간 새로 5명을 보충하여 상임위원회를 재구축하게 되였습니다.
조청은 집중전기간에 지부위원장을 새로 선출하여 2개 반을 재건하고 동포청년들속에 들어가는 사업체계를 정연하게 꾸림으로써 조대, 조고졸업생들을 한사람한사람 찾아가 그들의 잠재력을 발굴해나가고있습니다.
청상회는 계절마다 각종 행사들을 참신하게 조직하고 거기에 30대 동포들과 그 가족들까지 수많이 망라하고있으며 역원들은 학교리사나 분회역원, 《동포되찾기운동》추진위원 등 2몫, 3몫 맡으면서 동포사회의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나가고있습니다.
우리는 상임위원회의 지도밑에 《동포되찾기운동추진위원회》 부회활동을 강화하여 그 은이 나도록 하고있습니다. 특히 학생인입사업부회인 《학생인입프로젝트팀》을 학교 교원들과 영향력있는 비전임들로 새로 내오고 이들이 중심이 되여 학생인입사업을 왕성히 벌림으로써 올해 인입목표를 100% 달성하는 귀중한 경험을 쌓게 되였습니다. 또한 지난 4월 12일 민족단합부회가 중심이 되여 조직한 민족페스티벌은 민단동포들을 비롯한 각계각층 동포 360여명이 모임으로써 6.15의 기치아래 통일운동에 총합세할 지역동포들의 의지를 크게 과시하였습니다.
저는 자랑스러운 우리 지부비전임들을 위대한 장군님대에 일하는 총련의 비전임활동가로서의 영예와 긍지를 지니고 새로운 전성기의 개척자, 선구자로 나서도록 책임적으로 이끌어나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총련 22전대회를 지향하여 이꾸노동지부의 잠재력을 총발동하고 군중핵심대렬을 결정적으로 확대하며 기층조직을 튼튼히 꾸림으로써 6,000명의 동포들과의 사업체계를 빈틈없이 세워나가겠습니다.
새 세대를 중심으로 기층조직을 튼튼히 꾸리고 동포들과의 사업을 폭넓게 벌려나갈데 대하여
총련사이다마 서부지부 강명호위원장
제가 사업하는 총련사이다마 서부지부는 사이다마현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면적에다가 25개의 시, 정을 관할범위에 두고있으며 지난 시기 강제련행으로 끌려온 동포들이 많고 애족애국의 전통과 력사가 깃든 고장입니다.
총련 제21차 전체대회를 계기로 지부위원장을 맡아 사업하여온 저에게 지부사업에 대한 새로운 신심과 결심을 굳게 다지게 한것은 올해 총련지부일군대표단의 조국방문이였습니다. 조국체류기간 2012년에 기어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놓기 위하여 강행군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과 마음과 숨결, 발걸음을 맞추어 대혁신, 대비약을 일으키고있는 조국인민들의 모습에서 크나큰 확신을 얻게 되였습니다. 특히 원산청년발전소건설에서 영웅적위훈을 세우고있는 새 세대 돌격대장들의 모습은 같은 세대인 저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에게 또 하나 충격을 준것은 총련 가와사끼지부가 새로운 전성기를 맨 앞장에서 열어나가겠다는 드높은 결의를 담아 전체 지부일군들과 열성자들에게 보낸 호소편지였습니다. 선대들의 애족애국업적을 빛나게 계승하며 후대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그곳 지부일군들의 기세는 저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우리 지부는 광역지부이며 동포수도 4,000명을 넘습니다. 동포들이 흩어져 사는 산간지대도 있으며 도꾜도와 린근한 지역에는 이사를 와서 남모르게 사는 동포가 많은 신흥주택지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 지부의 지역적특성, 실태를 료해분석한데 토대하여 넓은 지역에 흩어진 동포들을 묶어세우자면 조직에 빈자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보고 분회건설과 청상회의 재건복구에 선차적인 힘을 넣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2년동안에 우리 학교를 졸업한 영향력있는 새 세대동포들 40명을 점찍고 사업한 결과 6개 분회중 5개 분회위원회를 25명의 위원으로, 그중 60%인 15명을 30대, 40대 동포들로 꾸렸으며 청상회조직도 13명의 간사들로 재건하였습니다.
이에 토대하여 지난해 2월부터는 총련과 녀성동맹, 상공회와 조청, 청상회 역원들을 중심으로 《동포되찾기운동추진위원회》를 정상적으로 가동시키는 토대를 구축하게 되였습니다.
저는 이만하면 괜찮게 노력한 셈으로 생각하고있었으나 조국방문과 총련 가와사끼지부의 편지를 통하여 된벼락을 맞게 되였습니다.
우리 지부는 조직체계에서 아직도 빈자리가 있으며 특히 지부상임위원들의 역할과 위원회의 운영방법, 분회위원회의 정상화와 동포들과의 일상적인 방문련계, 단체기층조직들간의 협조 등에서 여러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2차 총련지부일군대회를 지향한 집중행동을 조직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총련지부상임위원회를 달 1번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상임위원회의 지도밑에 《동포되찾기운동추진위원회》를 3개월에 한번 정규화하고있으며 지부상임들이 분회장, 분회위원을 겸직하며 청상회역원들도 분회위원을 맡아 역할을 놀도록 하고있습니다.
집중행동기간 지부상임들은 자기가 맡은 분회들에서 달 1번 제정된 날에 분회위원회를 정상적으로 가지며 조대, 조고 졸업생을 중심으로 동포방문사업을 벌렸습니다. 분회장들은 분회사업의 기본은 동포들속에 들어가는것이라고 하면서 솔선수범하여 다른 분회위원들을 이끌어나갔습니다. 이 기간 불고기점경영자인 가와고에분회장, 불경기로 두가지 일자리에서 밤낮가림없이 일하는 서남분회장을 비롯한 분회장들은 소중한 휴일을 바쳐가며 분회활동을 적극 벌렸으며 도꼬로자와분회장도 토요일이면 옹근 하루동안 분회관하 동포전호방문사업을 벌리는 등 분회의 호주답게 열성적으로 사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집중행동기간 3개 분회를 완전히 제발로 움직이는 수준으로 한단계 끌어올리게 되였으며 새로 찾은 동포 20호, 수년만에 련계를 회복한 동포 40호를 비롯하여 동포포착수의 60%인 350호의 동포들과의 련계를 맺게 되고 총련회비, 출판물독자 확대목표를 달성하는 등 귀중한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이 기간 조청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있던 지부상임위원회를 정상화하고 반단위에서 동포청년방문담화사업을 벌리게 되였으며 녀성동맹지부는 분회위원회의 정상화와 함께 새 세대 엄마와 어린이모임을 분회단위에서 운영할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오래동안 휴간상태였던 지부정보지 《상봉》을 복간하고 《무료동포상담의 날》의 조직, 등산소조의 결성 등 새로운 《그릇》과 사업가지의 조직과 운영도 비전임들이 주인이 되여 책임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오늘 서부지부는 고령동포모임인 《백봉회》, 학령전어린이모임인 《귀염둥이》와 《희망새》를 비롯한 년대별모임, 친목조직들과 문예체육소조 등 《그릇》과 사업가지들을 비전임상임들과 열성자들이 담당하여 자립적으로 운영하는 동포들과의 사업체계를 꾸려놓았습니다.
관할지역이 넓은데다 전임이 1명밖에 없는 우리 지부에서 관하동포들을 동포민족권에 망라하고 총련의 애족애국력량을 더욱 확대하자면 지부상임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이며 분회를 잘 꾸리고 생기발랄하게 움직이게 해야 하며 계층별단체의 기층조직들의 역할도 결정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저는 비전임일군들과 분회위원들속에서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로 반드시 강성대국의 대문이 열린다는 신념, 애족애국의 신념을 확고히 심어주는데 기본을 두고 지부학습반과 분회학습반을 운영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며 22전대회까지 총련과 녀성동맹의 6개 모든 분회를 활동력있는 분회로, 상공회와 조청을 비롯한 계층별단체조직을 보다 활성화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총련의 대중적지반을 확대강화하는 뚜렷한 전진을 가져오겠습니다.
새 세대 열성자들과의 사업을 강화하여 기층조직건설에서 전환을 이룩할데 대하여
총련아이찌 메이에끼메이사이지부 김룡수위원장
저는 21전대회를 계기로 4,800여명의 동포들이 거주하며 총련아이찌조직에서도 거점지부의 하나인 메이에끼메이사이지부에서 사업하게 된지 벌써 2년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새해에 들어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사상의도가 담겨진 공동사설과 새해축전을 깊이 새기면서 매우 중요한 해가 되는 올해에 총련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는 투쟁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이룩하자면 기층조직을 강화하는데 모든 힘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날 지부조직의 실태를 놓고 고민도 하고 해결방도를 모색하여도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있었던 저는 올해에 총련지부일군대표단으로 조국을 방문하게 되였습니다.
조국방문기간 저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이 되는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기 위하여 초강도강행군을 벌리시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를 의리와 량심, 실적으로 받들고있는 조국인민들의 투쟁모습을 통하여 지부위원장인 자신은 과연 어떻게 되고있었는가고 돌이켜보게 되였습니다.
특히 저는 조국에서 가와사끼지부가 일본 각지의 열성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접하여 거기에 깃든 선대들에 대한 의리와 후대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여 새로운 전성기를 앞장서 열어나가려는 높은 정신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국에서 돌아온 저는 일군들과 열성자들속에 새로운 혁명적대고조를 세차게 일으켜나가고계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위대성에 대하여 해설하고 장군님만 계시면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을 굳게 간직해나가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토대하여 저는 총련지부상임위원회 확대회의를 가지고 지부일군대회까지의 사업목표와 계획을 토의하여 《70일운동》에 궐기해나섰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정상적으로 운영하고있는 지부상임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는데 큰 힘을 넣었으며 지부위원장이 혼자서 생각하고 뛰는것이 아니라 상임위원회의 운영과 분공, 총화도 집체적으로 진행하여 잘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스스로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지부상임위원속의 2명이 분회장을 겸직하고있는 속에서 그들의 사업도 밀어주고 모든 상임들이 분회동포를 10호씩 분공맡아 사업하도록 하였습니다.
특히 저는 가와사끼지부의 편지를 항상 가방안에 넣고 매일 자기 사업을 돌이켜보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분회조직들을 새 세대동포들로 활성화하기 위한 돌파구를 2개 분회에서 열어나가기 위하여 방조사업을 집중적으로 짜고들었으며 년세많은 분회장이 혼자서 열성적으로 활동해온 니시분회에 총련본부, 현단체의 방조성원들과 함께 들어가 새 세대동포들이 분회사업에 주인답게 나서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지역에 적지 않게 이사해오는 젊은 동포들속에서 장악된 18호의 동포들이 분회의 존재자체에 대하여 잘 모르는 속에서 《西분회 새 세대 동포가족모임》을 처음으로 조직하기로 결정하고 방조성원모두가 대상동포들과의 사업체계를 세워 동원사업을 벌린 결과 당일 모임에는 분회관하 새 세대동포가족 45명을 포함한 59명의 동포들이 참가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기간에 지난 시기 다른 지방에서 전임을 하다가 이사해온 동포와 학부모를 비롯한 열성동포들과 거듭 만나 지역동포사회와 분회사업에 대하여 깊은 담화를 나누었으며 어떨 때는 밤을 새워가면서 론쟁을 벌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악하게 사업한 보람이 있어 젊은 동포 4명은 분회모임에도 참가하고 앞으로 분회장을 도와 분회사업에 적극 나설 결의를 다지는 귀중한 전진을 이룩하게 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총련과 녀성동맹 이와쯔까분회위원회를 정상화하고 분회의 워킹소조를 정상운영하였으며 5개의 모든 분회들에서 지부정보지 《동네거리》를 지난 시기보다 100호 더 많은 300호의 동포속에 보급하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조청과 청상회조직을 재건활성화하는데 힘을 넣었습니다.
저는 열성청년들을 중심으로 지부협의회를 꾸리기로 작전하고 근 석달동안 조청본부의 힘을 받아가면서 개별담화와 집체적협의를 거듭 짜고들었으며 지난 6월에 모임을 가지고 조청지부협의회를 정식으로 발족하고 운동에 궐기시키는 귀중한 경험을 이룩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일시 활동을 중단하고있었던 청상회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회장을 비롯한 간사들과의 사업을 목적의식적으로 짜고들어 간사회를 정상화하였으며 가을철에 가지는 총회까지의 사업목표를 세우고 운동에 떨쳐나서게 하였습니다.
녀성동맹지부는 지난 6월에 진행된 《제7차 아이찌동포녀성문화발표모임》에 무용소조와 장고소조를 출연시켜 소조를 튼튼한 《그릇》으로 만들고 운영해나가게 되였습니다.
저는 《70일운동》을 통하여 총련중앙방침을 무조건 받아물고 이악하게 사업하지 않고 조건타발이나 우는 소리를 하여서는 군중핵심을 키울수 없으며 특히는 조직체계, 사업체계를 튼튼히 꾸리지 않고서는 지부운동을 한걸음도 전진시킬수 없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또한 《하면 된다!》는 높은 정신력으로 사업하는가 어떤가에 지부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귀중한 경험을 틀어잡게 되였습니다.
저는 김정일장군님의 말씀을 높이 받들고 자기 지부의 새로운 전성기는 자신이 기어이 열어나가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를 안고 새 세대 비전임열성자대렬을 질량적으로 튼튼히 다지고 총련과 녀성동맹의 모든 분회와 단체들을 더욱 활성화하며 동포군중지반을 결정적으로 확대강화해나가겠습니다.
비전임일군들을 주인으로 내세워 광범한 동포녀성들과의 사업을 참신하게 벌릴데 대하여
녀성동맹니시도꾜 동부지부 주행위원장
애국적바탕이 든든한 동부지부에서 고문들과 열성자들의 따뜻한 사랑과 뒤받침을 받아가면서 녀성동맹 조직부장, 위원장으로서 근 20년간 사업해오면서 오늘 이 대회에서 토론을 하게 되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지난 총련지부일군대회이후의 15년이 과연 어떤 15년이였습니까.
저는 정세가 엄혹할수록 위대한 장군님만 계시면 이긴다는 그 한마음으로 그리고 장군님의 강령적말씀대로 녀성동맹지부와 분회를 튼튼히 꾸리고 동포들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너성동맹의 사업방법을 대담하게 전환할 일념으로 언제나 심사숙고하고 활동하여왔습니다.
제가 무엇보다 힘을 돌린것은 지부상임위원회와 분회를 변화된 현실과 동포녀성들의 요구에 맞게 새 세대로 튼튼히 꾸리는 사업이였습니다.
재일동포들의 큰 자랑인 조선대학교와 금강산가극단이 있고 조대, 조고를 나온 힘있는 동무들, 유자격자들도 적지 않은 우리 지부의 유리한 조건을 백방으로 살려 새 세대의 좋은 인재들로 꾸려나갔습니다.
인재를 꾸리는데서도 동포녀성들의 지향과 요구에 대응할수 있는 민족사랑, 동포사랑의 마음이 강하면서도 전문적 자질을 가진 녀성들로 꾸리는데 주력하였으며 상임 8명속에서 7명이 무용, 체조, 에아로빅스의 전문강사, 개호헬퍼, 번역자의 유자격자들이며 나이도 다 저보다 젊은 30대, 40대 녀성들입니다.
지부상임위원회를 이렇게 꾸리니 동포녀성들이 지부상임위원회를 적극 지지해주고 지부와 분회에 의거하면 많은 문제가 풀린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있습니다.
지부는 동포녀성들의 지향과 요구를 폭넓게 장악하고 그를 성심성의로 재빨리 풀어주는것을 철칙으로 하여 사업을 밀고있습니다.
동포녀성들의 제일관심사는 역시 아이키우기사업이고 교육문제입니다.
우리 지부는 관하에 니시도꾜제1초중과 도꾜제9초급을 둔 지역적인 특성과 학령전세대와 학부모세대를 다 책임진다는 결심밑에 각 학교담당, 각 세대담당으로 부장, 부부장, 부원 계 9명으로 자녀부를 꾸리고 그들의 역할을 높이도록 하고있습니다.
분회에까지 자녀담당자를 두고 그들이 하나가 되여 사업을 구상하고 밀고나가니 분회사업은 활성화되고 일이 얼마나 잘되는지 모릅니다.
젊은 동포녀성들의 네트워크가 확대되고 학령전어린이찾기명단화의 목표가 해마다 달성되는것은 물론 8년의 력사를 가진 학령전어린이와 엄마들의 모임인 《자라라회》의 여러 행사들, 학생들의 아버지까지 대상으로 한 련속강연회와 자녀상담강좌 등을 빈틈없이 조직하고있으며 이젠 아이키우기의 여러 활동에 어머니들만이 아니라 아버지들도 참여하는 기풍이 서나가고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휴대메일련락체계도 갖춤으로써 학령전 아동들의 엄마를 비롯하여 학부모세대 엄마들 80여명이 빠짐없이 련락체계에 망라되였습니다.
작년부터 세이부분회와 미나미분회에서는 여름철학동보육까지 하게 되였습니다.
아동모집으로부터 담당자분공, 보육장소의 확보 등 자기 아이들뿐아니라 동포자녀들을 위하는 어머니들의 사랑과 의욕, 열성과 행동력에 탄복하면서 저는 이런 좋은 새 세대들의 잠재력을 발동시켜나간다면 우리 지부의 앞날은 창창하다는 확신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새 세대들과의 사업과 함께 고문들과의 사업도 더 잘하기 위하여 지부사무소에서 《녀맹의 날》을 시작하였습니다.
영화학습, 간담회, 식사모임 등 여러 가지 기획으로 호평을 받는 《녀맹의 날》에는 갈수록 참가자가 불어나고있으며 넓지 못한 지부사무소는 30여명의 동포녀성들의 웃음꽃, 이야기꽃이 넘치고있습니다.
현재 지부관하에 무용소조를 비롯한 6개 소조와 50대녀성들의 모임인 《목란꽃소조》를 비롯한 3개의 년대별모임 등 동포들의 요구에 맞게 9개의 크고작은 그릇들이 정상운영되고 관하 동포들로 늘 흥성이고있습니다.
저는 10년전에 관하 동포고령자들의 애로와 요구를 더 깊이 리해하기 위해 개호헬퍼 2급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위원장으로서 직접 개호사업에 나설수는 없지만 고령자들과의 사업에서는 많은 도움이 되고있습니다.
지난 10년동안에 우리 곁을 떠나신 애국1세분들은 20여명이 됩니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우리 지부 초대 총련위원장인 리고문은 생전에 늘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문, 고문 하고 불러주는 새 세대 일군들이 있기에 우리 고문이 빛나지 불러주는 일군이 없으면 우리가 무엇이랴.》
아무리 자기가 일을 잘해도 그를 이어가는 사람을 키우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고문의 말을 순간도 잊지 말고 선대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믿음을 다음 세대들에게 고스란히 돌려나갈 사명을 간직하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기 위한 강행군의 진두에 서시여 험산준령을 넘고계십니다.
바로 우리앞에는 동부지부의 새 전성기를 열기 위하여 더욱 분발하여야 할 높은 요구성이 나서고있습니다.
저는 본대회에서 제기된바와 같이 기층단위인 분회를 더욱 강화하고 그 역할을 더더욱 제고할것입니다.
저는 새 세대 동포열성자들을 더 발굴하여 기층단위역원들로 내세우며 자녀교양사업을 한층 강화하고 학생인입사업에서 뚜렷한 전진을 이룩하겠습니다.
또한 《동포되찾기운동》을 통하여 더 많은 동포녀성들을 찾아내고 지부와 분회가 조직하는 다양한 《그릇》에 망라하여 동포민족권을 확대해나갈것입니다.
저는 위원장의 사명감을 깊이 명심하고 어떤 정황속에서도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드놀지 않는 신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여는 보람찬 투쟁에 앞장서 나갈것을 굳게 결의다집니다.
지역상공회가 동포상공인들의 상기업활동을 잘 도와주며 총련조직과 지역동포사회의 발전에 적극 이바지할데 대하여
교또 후시미상공회 강우리사장
저는 교또시 후시미에서 나서자라고 교또조고를 졸업하였으며 기업활동을 하면서 후시미상공회의 리사장으로 사업하고있습니다.
령세한 규모의 음식업, 토목건축업, 가내공업 등이 대부분인 우리 상공인들은 정치적으로 어렵고 경기불황이 지속되는속에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안고 사업하고있습니다.
우리 상공인들과 동포사회가 난관을 겪고있는 이때 저는 자기 기업도 중요하지만 상공인들을 위하여, 동포사회를 위하여 우리 상공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일하고있습니다.
후시미상공회는 상임리사를 비롯한 비전임역원들과 고문들 그리고 전임일군들이 힘을 합쳐 총련지부를 중심으로 지부관하의 다른 단체들과 한마음한뜻이 되여 모든 일을 하고있습니다.
우리 상공인들이 애국적인 1세들의 뒤를 따라 자기 역할을 다하자면 조국과 총련사업에 대하여, 우리를 둘러싼 정세에 대하여 잘 알고 합심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상공회는 지난 수년간 학습을 빠짐없이 진행하여왔으며 교또부상공회와 지역에서 조직되는 각종 강연회와 쎄미나에도 역원들과 회원들이 적극 참가하도록 하였습니다.
기업활동이나 생활이 바쁜 속에서도 상임리사회를 정상적으로 조직운영하여 상공회사업과 지역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창의창발성을 발휘하여 집체적으로 토의하고 분공도 조직하여 역원들이 주인된 역할을 높이고있습니다.
우리 상공회는 정원조회장을 중심으로 역원들과 전임일군들이 단결하여 동포상공인들의 상기업활동을 적극 방조하고있습니다.
전임일군들은 매달 모든 법인회원을 찾아가 기장지도와 함께 경영상 제기되는 크고작은 애로를 풀어주기 위하여 성심성의로 사업하고있습니다.
이와 함께 상공회에서는 상공인들의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융자알선, 경리세무실무에 대한 방조사업 등 일상적으로 회원들속에 들어가 그들의 실리를 도모하는데 모든 힘을 다하고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일본반동들이 《세리사법위반》을 구실로 교또부상공회에 대한 탄압책동을 감행하였을 때에는 놈들의 책동의 본질을 철저히 알리고 항의집회와 시위에 적극 나서는 등 총련과 상공회조직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상공인들은 역시 마지막에 믿을수 있는것은 상공회라고 말하면서 언제나 우리 사무소를 찾아옵니다.
2년전 후시미상공회결성 40돐에 즈음하여 하루려행, 기념행사, 금강산가극단디너쇼 등에 무려 700여명의 동포들이 망라되여 축하해주었을 때 저는 어려운 시기에 리사장을 맡아 사업하였지만 정말로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우리 상공회의 또 하나의 자랑이며 중요한 경험은 총련 후시미지부와 함께 애족애국의 전통을 지키고 화목하고 힘있는 동포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한덩어리가 되여 노력하고있는것입니다.
현재 회장을 비롯하여 상임리사들의 거의 대부분이 총련지부상임위원회와 《동포되찾기운동추진위원회》 성원으로서, 그리고 단체와 학교의 역직을 맡고 지역동포사회의 주인답게 활동하고있습니다.
저 역시 2007년 말부터 여러가지 고민을 하였으나 동포사회를 위하여 하나라도 더 많이 기여하여야 한다는 결심밑에 교또조선중고급학교 교육회 회장직을 맡아 사업하고있습니다.
우리는 작년에 교또중고창립 55돐에 즈음하여 수천만엔의 예산으로 교사 보수공사도 하고 2,000여명의 졸업생들과 동포들이 모인 기념동포축제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자기 모교가 《공부를 잘하는 모범학교》칭호도 수여받았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후시미상공회는 《동포들이 모이면 힘이 된다》는 구호밑에 계절마다 회원뿐만아니라 광범한 동포들을 망라한 특색있는 모임들을 지부와 협공하여 조직해왔습니다.
특히 저는 최근시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학교와 동포사회발전을 위하여 물심량면으로 공헌하는 문제는 경제단체인 상공회가 맡아나서야 할 주요한 사업이라고 간주하고있으며 이것은 우리 역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저는 올해 6월에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교또중고 고급부학생들과 함께 난생처음으로 조국을 방문한것입니다.
처음으로 보는 조국은 일본에서 듣는 것과 너무도 달랐습니다.
신심에 넘쳐 일하는 조국인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몸으로 느낀것은 《우리가 하는 일은 옳다.》, 미국과 일본, 리명박도당이 아무리 발악하여도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였습니다.
또한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동포사회의 미래를 떠메고나가는 그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조국과 조직을 위하여 제가 상공회 리사장으로서, 교육회 회장으로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겠다는 결의를 새로이 다지게 되였습니다.
지금 동포상공인들은 이제까지보다 몇배나 절박하고 다양한 요구를 제기하여 상공회가 도와줄것을 바라고있습니다.
우리는 상공회를 《동포밀착형》, 《지역밀착형》의 조직으로 튼튼히 꾸리고 동포상공인들에 대한 선전교양사업에 첫째가는 힘을 돌리는 한편 그들에 대한 경영지원, 경리세무방조, 정보발신을 통한 경제적실리를 도모하는 사업, 민족문화활동 등 상공인들의 요구에 맞는 사업을 더 많이 벌려나가겠습니다.
저는 본대회를 계기로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갈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보람찬 투쟁에 후시미상공회와 저자신이 앞장서나갈것을 굳게 결의다집니다.
조청반조직을 튼튼히 꾸리고 활성화하며 선대들의 애족애국의 전통을 꿋꿋이 이어나갈데 대하여
조청도꾜 이다바시지부 리상원위원장
오늘 심각해지고있는 새 세대들의 민족성상실을 막고 애족애국의 전통을 계승해나가자면 조청의 지부와 반을 튼튼히 꾸리고 사업을 크게 활성화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몇해동안 조청 이다바시지부는 이와 같은 요구에 맞게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특히 기층조직인 반을 튼튼히 꾸리지 못한결과 지부사업은 지부가 조직하는 행사위주의 활동에 치우치고 모으는 대상도 언제나 같은 동무들이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조대를 졸업하여 지부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4년이 지났지만 저자신 반이 없어도 지부행사에 일정한 수의 청년들이 모이는것으로 만족해하고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반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 절박한 요구를 자신의 요구로 틀어잡지 못하고 반건설의 경험이 없다니 뭐니 하면서 뒤로 미루고 본격적으로 짜고들지 못해왔던것이였습니다.
이러한 자신의 결함을 깊이 뉘우치게 된 저는 반건설을 다그칠데 대한 자신의 생각을 유일하게 활발히 움직이는 어느 반의 반장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동무는 《지부사업은 즐겁게 지내는것만이 아니라 동포사회를 이어갈 인재를 남겨야 한다.》, 《동네를 지키는 핵심은 분회의 대를 잇는 조청반에서 키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반사업에 큰 힘을 넣자. 자기 반이 우선 봉화를 올리겠다.》고 나서는것이였습니다.
며칠후 반장은 반위원들을 이끌어 분회사무소를 찾아가 《앞으로는 반위원회를 분회사무소에서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것이였습니다.
사무소 1층에서 진행된 회의에서는 반사업의 중요성에 대한 반장의 문제제기에 따라 토론이 진행되였습니다.
어떤 동무는 《반이면 인원이 적어지니 흥성거리지 않을것이다.》고 말하였으며 《나는 반위원이지만 무엇을 하면 좋을지 전혀 모르고 특별히 일감도 없다.》고 말하는 동무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반장은 《이 동네가 없으면 우리가 조선사람으로 자라지 못했고 정다운 관계도 없었다. 이를 귀중히 여긴다면 우리 동네를 사랑해야 한다.》고 뜨겁게 말하는것이였습니다.
반위원회가 끝날무렵 분회사무소 2층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분회위원아저씨들이 1층에 내려오셨습니다.
반장은 미리부터 분회위원회날에 맞추어 반위원회를 소집한것이였습니다.
분회위원아저씨들은 손자나이의 그들에게 맥주도 부어주시고 무릎을 맞대고 밤늦도록 분회의 력사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날 반위원들은 조청반이 없으면 분회와 동네의 대를 이을 사람이 자라지 않는다는것을 자기 문제로 틀어쥐게 되였습니다.
이 반의 반위원들은 이제까지 지부에 한번도 얼굴을 내지 않던 어떤 청년을 거듭 찾아가 설복하고 고민도 풀어주고 일부러 그의 휴일에 맞추어 행사도 조직하면서 끝내 반에 망라하는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과정에 반이라야 동포청년들을 자주 만날수 있고 더 정다운 관계를 구축할수 있으며 마음의 거리는 휴대전화로써는 메울수 없다는것을 실감하게 되였다고 합니다.
우리 지부상임위원회는 각 반에서 창조된 모범을 일반화하고 5개 모든 반이 보조를 맞추어나가도록 지난 5월말에 전체 반위원들을 대상으로 열성자모임을 소집하였습니다.
열성자모임을 계기로 반장들은 《지부실태를 알수록 반의 위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과제가 명백해졌다.》고 하면서 총련지부일군대회까지 6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40일간돌격전을 벌려나가자고 궐기해나섰습니다.
6가지 목표를 관하 5개 반이 달 한번 반위원회와 반학습회를 꼭꼭 진행하고 동맹원들에 대한 방문담화정상화, 정보지발간과 포착대상전호배포, 일교학생회재건, 료리소조발족, 지부 및 반행사에 동맹원들을 크게 망라하는것으로 정하였습니다.
돌격전을 시작한지 18일만에 관하 동맹원 35명전원을 만나 사업한 반장이 나왔으며 예정되여있던 자격시험을 취소하고 40일간 매일과 같이 지부에 나온 반장도 있었으며 저녁에 반사업시간을 내기 위해 일터를 바꾼 반장까지 나왔습니다.
간호사를 하는 어떤 반위원은 반장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분회장을 하시는 아버지가 지키는 이 동네를 대를 이어 빛내이기 위해 조청반을 튼튼히 꾸리겠다.》고 하면서 야간근무의 다음날에도 반성원집을 찾아갔습니다.
2년전까지만 해도 겨우 한개 반이 움직일가 말가 하던 우리 지부가 오늘은 관하 5개 모든 반이 정상화되고 매달 동포청년들속에 들어가는 사업체계를 확립하게 되였습니다.
저는 항상 조국의 기상을 안고 살면 어떤 난관도 극복할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4년간의 짧은 기간이기는 하나 저자신이 얻은 경험은 어려울 때일수록 조청원들속에 들어가 그들을 믿고 그들에게 의거하면 이긴다는것입니다.
《하면 된다! 되면 승리한다!》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 로동자들이 든 이 구호는 돌격전기간에 저와 우리 지부 열성자들이 심장에 새긴 신념입니다.
저는 지난해 조국에서 만난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 청년돌격대원들과 함께 다진 약속대로 조국과 민족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며 김정일장군님의 말씀을 청년들이 앞장서 관철함으로써 력사적인 2012년에 기어이 기쁨의 보고를 드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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