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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굳힌 《제1차 동중배》, 히가시오사까중급 축구부 《전국대회》출전 10돐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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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여름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히가시오사까조선중급학교 축구부가 민족교육사상 처음으로 일본중학생들의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귀중한 1승을 거두었던것이다. 한덩어리가 되여 《전국16강》에 들어선 그당시 선수들이 새해벽두에 한자리에 모였다. 《전국대회》 첫 출전 10돐을 기념하는 《제1차 동중배(杯)》(4일, 동교)를 조직한것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모교에 製氷機를 선물하고 《우리가 모교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굳히였다.
10년전의 쾌거
 | | 《제1차 동중배》축구시합에 참가한 36, 37, 38기의 미더운 졸업생들(4일, 히가시오사까중급) |
일본중학교체육련맹(중체련)이 우리 학교의 《전국대회》출전의 문호를 개방한 다음해인 1997년 8월, 히가시오사까중급 축구부는 《전국중학교축구대회(全中)》에 처음으로 출전하였다.
개회식때 어느 중체련관계자는 말하였다.
《이번 대회는 참으로 의의깊은 대회이다. 그것은 금년도부터 조선중급학교의 출전이 인정되여 깅끼블로크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히가시오사까조선학교가 멋지게 〈전국대회〉진출을 성사하였기때문이다. 이로써 본 대회는 순전히 전국챔피언을 결정하는 대회로 되였다.》
조국의 따뜻한 배려와 애국1세들의 피땀이 깃든 재일동포자제들을 위한 중등교육의 력사가 50년을 넘은 이때에 히가시오사까중급 축구부가 《전국대회》에 출전한것은 우리 민족교육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대단한 쾌거였다. 동 축구부는 이후 2004, 2006년의 《전국대회》도 경험하게 된다.
긍지와 자부심
 | | 백열전이 벌어진 축구시합(사진은 36기 대 37대) |
1997년대회때 각지 동포들의 뜨거운 시선을 모은 중2, 3 선수들은 동교 37, 38기생들이다. 《제1차 동중배》 축구시합에는 이들과 함께 36기생들도 합류하였다. 그들은 1996년의 오사까시春季대회에서 3위에 들어서면서도 《상위6교》에만 참가자격이 주어지는 부예선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었다.
《제1차 동중배》에서 36기생들을 통솔한 리성행청년(26살, 36기 주장)은 학생시절을 회고하였다. 《우리는 정말로 강했어요.》
중체련이 우리 학교에 대해 《전국대회》출전의 결정을 내린것은 1996년 2월이다. 이해 4월에 중3이 된 36기생들은 그후 오사까조고 축구부에서 활약하면서 1999년, 《전국고등학교종합체육대회(인터하이)》에 처음으로 출전하게 되였다.
리성행청년은 말을 이었다. 《우리는 〈동중축구부〉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왔어요.》
《제1차 동중배》준비위원회의 한 성원이기도 한 그는 강호 히가시오사까중급 축구부가 동포들로부터 받은 은혜를 이제 꼭 갚자고 모두에게 호소하였다.
《서로 돕도록》
동교 축구부감독인 박수용교원을 비롯한 관계자들도 초대된 《제1차 동중배》. 경기에 열중하는 이전 선수들의 모습은 중급부시기의 그 름름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백열전끝에 우승의 영예를 지닌것은 37기생들이였다.
《전국대회》에 출전했던 홍성진청년(25살)은 동교를 졸업한 후에는 오사까조고 투구부에서 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동 축구부에서 터득한것은 참으로 많았다, 무엇보다도 《근성》을 키울수가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후배들은 계속 〈전국대회〉출전을 목표로 꾸준히 노력해주기 바랍니다. 나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오늘처럼 모교를 찾아오겠습니다.》 하고 벙긋 웃었다.
량영이청년(25살, 간또사회인리그.FC마찌다제르비아소속)은 《오늘 오래간만에 동창생들과 만나 함께 뽈을 차니까 꼭 축구선수로서 성공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고 말하였다. 그는 앞으로 조선대표도 시야에 두고 림할 결의를 피력하였다.
박수용교원은 새 력사가 시작된 10년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있다며 《여러 동포들의 기대에 보답한것은 기적에 가까왔다. 모교를 잊지 말고 계속 재일동포사회의 번영을 위해 기여해달라. 앞으로도 동창생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나가도록 하자.》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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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5 1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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